내가 만난 석선선생님

[깨진 컵을 고르시던 석선 선생님] 내가 만난 돌나라 석선 선생님

돌나라 2023. 9. 21. 10:00

 

 

내가 만난 돌나라 석선 선생님

[깨진 컵을 고르시던 석선 선생님]

 

남편과 함께 문막에서 양봉업을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몇 분이 석선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날 선생님은 강원도 부론에 오셨다가

우리 부부가 문막에 산다는 걸 아시고는 일부러 들러 주신 것 같았다.

 

갑작스런 방문에 손님을 대접해 드릴 마땅한 것이 없던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흔한 꿀 생각이 났다.

내가 직접 채취한 100% 아카시아 진꿀로 얼른 꿀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정작 그 다음이었다.

손님 세 분과 남편, 모두 넉 잔의 꿀물을 컵에 따라 놓고 보니

컵 한 개가 약간 깨져 흠이 있는 게 아닌가! 

 

손님들께 이런 컵을 내놓는 것이 참 죄송스러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쟁반에 컵을 받쳐들고 들어가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분들이 먼저 흠이 난 컵을 들면 선생님께선 흠 없는 컵의 차를 드실 수 있을 거야.'

 

방으로 들어간 나는 문제의 컵을 선생님이 앉으신 반대쪽으로

잘 보이지 않게 살짝 먼저 내려놓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언제 보셨는지

나머지 컵을 다 내려놓기도 전에 깨진 컵을 누가 먼저 가져갈세라

재빨리 잡으시더니 한 컵을 단숨에 쭉 들이키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드리려던 컵은 이건데 …."

 

죄송한 마음에 그렇게 말씀 드리자 빙그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아니지. 나는 깨진 걸 알고 마셨으니까 조심했는데,

그걸 모르고서 누군가 마시다 혹시 입술에 상처라도 나면 안 되잖아.

불청객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귀한 진짜 꿀차 한 컵씩 대접 잘 받았으니 감사할 뿐이지 …"

 

석선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배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큰 교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