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생긴 일] 내가 만난 돌나라 석선 선생님
내가 만난 돌나라 석선 선생님
[부엌에서 생긴 일]
우리 가족은 지금의 마근담 학교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부엌에서 학생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함께 일하는 언니였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오늘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신대.
그래서 아무래도 음식 준비를 잘해야 될 것 같아서 …."
조용했던 부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한쪽에서는 '도도도독 …' 도마 소리,
저쪽에서는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는 소리,
또 한편에서는 '딸랑'거리며 밥솥의 추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 ….
모두 바쁘게 일을 했지만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수도.
그때는 시골 가정의 재래식 부엌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을 받아 쓰고 바닥에 버리면 좁은 하수도 구멍이 자주 막혀
부엌은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종종 팔을 걷어붙이고 손으로 찌꺼기를 걷어 내야만 했다.
그날도 물을 많이 쓰고 버리며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부엌으로 들어왔다.
환하게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선 분은 바로 선생님이셨다.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그리고는 언제 보셨는지 갑자기 소매를 걷으시고는
막혀 있던 하수도 구멍에 손을 집어넣고
흙이며 각종 찌꺼기와 오물들을 다 걷어 내고 계시는 게 아닌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은 막힘 없이 잘 내려가고 있었지만 순식간의 일이라
우리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부엌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식구들 위해 들러 주셨던 선생님,
항상 당신이 필요되는 곳이 어딘지 살피시는 선생님께는
막힌 하수구가 쉽게 눈에 띄셨던 거다.
늘 뵙는 모습이지만 그날 선생님께서 보여 주신 '솔선 수범'을 기억해 가며
나는 지금껏 '겸손의 도(道)'를 실천하려 애쓰고 있다.
아울러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막힘 없이 흐르는 물처럼
'낮아짐의 교훈'을 통해 형통해지는 법도 소중한 교훈으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