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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라 Doalnara
1985년, 우리 가족은 지금의 마근담 학교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부엌에서 학생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함께 일하는 언니였다."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오늘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신대. 그래서 아무래도 음식 준비를 잘해야 될 것 같아서 ···."조용했던 부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한쪽에서는 '도도도독 ···' 도마 소리, 저쪽에서는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는 소리, 또 한편에서는 '딸랑' 거리며 밥솥의 추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 ··· 그뿐인가, 아궁이에 급히 지핀 불 때문에 매캐한 연기 속에서 '콜록콜록' 거리며 토끼가 된 눈을 연신 비벼가며 일을 했지만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
중학교 1학년 때, 하루는 시집간 큰언니가 집에 다니러 왔다. 그날 언니는 오빠와 무언가를 한참 상의하는 것 같았다."그 소장이 그 산이 비싸다며 절대 사지 말라고 난리를 치더라.""누나, 그 사람 말 듣지 마. 그 소장은 자기 건 비싸게 팔아넘겨 자기 잇속 톡톡히 챙기면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남의 걸 누가 산다고 하면 그렇게 배 아파하는 사람이야."문지방 너머로 들려오는 큰언니와 작은오빠의 대화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평소의 품성을 보면 그분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달라고 하실 분이 절대 아냐. 누나, 한번 믿어 봐.""그래, 그 소장이 뭔가 잘못 알고 그런 걸 거야. 그치?" 그런 대화가 오간 며칠 후 언니는 형부와 함께 경남 하동 양보면 구정에 있다는 선생님의 집과 밤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언..
전라도에서 농사지으실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논보리를 베어 주러 온 청년에게 "충청도는 보리밭고랑이 좁은데 여기 보리 골은 꽤 넓어 보이네요.""네. 참, 박 선생님은 충청도에서 나셨다고 하셨죠? 여기 보리 골은 1 미터는 됩니다." 선생님은 마을의 한 청년과 함께 보리논에서 보리 베기에 열중하고 계셨다. 이 청년은 마을에서 가장 일 잘하고 특히 낫질에 '내로라' 큰소리치는 '낫질 선수'였다. 선생님의 낫질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던지 이 청년은 대뜸 선생님께 제안을 했다."박 선생님! 우리, 누가 보리를 빨리 베어 나가나 내기 한번 해보시겠어요?" 이 고을에서 한 번도 누구에게 져 본 적이 없는 낫질 솜씨였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낫질에 한번 겨루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그..
좋은 옷이든지 무엇이든지 생기면 늘 이웃에게 나눠 주시는 선생님께서는 늘 비슷한 종류의 색상과 같은 모양의 옷을 자주 입곤 하셨다. 그런데 제자 된 나는 오히려 친척들과 다른 형제들을 통해 좋은 옷도 가끔씩은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을 뵐 때마다 죄송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내 마음 한 편의 아픔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백화점에 들렀다가 마음에 꼭 드는 옷 한 벌을 보게 되었다. 전세계에 수많은 제자들을 두셨어도 워낙 청빈하신 선생님의 성품을 잘 아는 제자들이라 함부로 옷 선물도 못해 드렸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평소에 품고 있던 '옷 선물' 생각이 나의 마음에서 떠나질 않고 맴돌았다. 내 소원이 선생님께 멋있는 옷 한 벌 해 드리는 것이었는데 ' 바로 저 옷이다!..
어느 해 초겨울, 선생님 댁에 손님이 찾아왔다.선생님 댁은 산자락의 음지에 위치하고 있어 매우 추운 곳이었는데, 그 방문객은 겨울에도 항상 산에 가시는 선생님을 위해 겨울 잠바를 선물로 준비해 가지고 왔다. 유난히 추운 속리산 골의 겨울을 생각하며 가족들은 너무 좋은 선물이라며 내심 기뻐했다. 당시에는 오리털 파카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라 매우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여 앉은 가족들이 선물을 보며 기뻐하고 있는데, 마침 2층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응접실로 내려오셨다. "선생님, 이분이 선생님께 드린다고 귀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기뻐하고 있던 가족들의 표정과는 달리 선생님은 별로 반가운 기색이 없었다."이것 얼마 주고 샀습니까?""예. 70만 원짜리 옷입니다.""미안하지만 난 이 옷 안 입..
1986년 서울에서 살다가 석선(石仙) 선생님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강의를 들은 후 가족과 함께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와서 살았다. 어느 해 봄의 일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형수님이 나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며 의류 사업을 했다는 내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찾아왔다며 들고 온 가방에서 옷 한 벌과 함께 명주 옷감을 꺼네 놓았다. "이 옷은 잠옷인데, 이걸 견본으로 재단해서 옷 한 벌만 지어 주세요." 일감을 맡긴 형수님은 갈 길이 바쁜지 금세 가 버렸다. 그날은 특별히 밀린 일도 없던 날이라 곧장 그 물건을 들고 집안에 꾸며 놓은 작업실로 갔다. 재단을 하려고 잠옷을 펼치는 순간, 나는 당황했다.'햐, 이런 옷도 다 있네. 아무리 낡은 옷이라도 그렇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