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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라 Doalnara
80년대 후반, 남편과 함께 문막에서 양봉업을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몇 분이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그날 선생님은 강원도 부론에 오셨다가 우리 부부가 문막에 산다는 걸 아시고는 일부러 들러 주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손님을 대접해 드릴 마땅한 것이 없던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흔한 꿀이 생각났다. 내가 직접 채취한 100% 아카시아 진꿀로 얼른 꿀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정작 그다음이었다. 손님 세 분과 남편, 모두 넉 잔의 꿀물을 컵에 따라 놓고 보니 컵 한 개가 깨져 흠이 있는 게 아닌가!손님들께 이런 컵을 내놓는 것이 참 죄송스러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쟁반에 컵을 받쳐 들고 들어가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경치 좋은 학골 지부로 이사를 왔다. '선생님 댁 가까이 왔으니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가야지.' 하는 마음에 이삿짐 정리를 부리나케 마치고 선생님 댁으로 곧장 향했다.먼 데 살면서 마음으로만 늘 그리던 선생님을 이제 곧 만나 뵐 생각을 하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선생님도 나를 보시면 얼마나 반가워하실까? 큰절을 드려야 할 텐데, 잘할 수 있을까? 무슨 말씀을 제일 먼저 드릴까? …' 이런저런 생각으로 들떠 있는데, 벌써 선생님 댁에 도착. '역시 가깝긴 가깝구나.' 내 예상대로 선생님께선 무척 반가이 맞아 주셨다. 큰절을 드리고 한참 선생님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선생님을 찾아왔다. '이 행복한 분위기를 깨는 불청객이 누군고?' 보니 선생님 댁 근처에 사는 자매였다. 남의 심정..
1985년, 우리 가족은 지금의 마근담 학교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부엌에서 학생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함께 일하는 언니였다."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오늘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신대. 그래서 아무래도 음식 준비를 잘해야 될 것 같아서 ···."조용했던 부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한쪽에서는 '도도도독 ···' 도마 소리, 저쪽에서는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는 소리, 또 한편에서는 '딸랑' 거리며 밥솥의 추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 ··· 그뿐인가, 아궁이에 급히 지핀 불 때문에 매캐한 연기 속에서 '콜록콜록' 거리며 토끼가 된 눈을 연신 비벼가며 일을 했지만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
중학교 1학년 때, 하루는 시집간 큰언니가 집에 다니러 왔다. 그날 언니는 오빠와 무언가를 한참 상의하는 것 같았다."그 소장이 그 산이 비싸다며 절대 사지 말라고 난리를 치더라.""누나, 그 사람 말 듣지 마. 그 소장은 자기 건 비싸게 팔아넘겨 자기 잇속 톡톡히 챙기면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남의 걸 누가 산다고 하면 그렇게 배 아파하는 사람이야."문지방 너머로 들려오는 큰언니와 작은오빠의 대화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평소의 품성을 보면 그분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달라고 하실 분이 절대 아냐. 누나, 한번 믿어 봐.""그래, 그 소장이 뭔가 잘못 알고 그런 걸 거야. 그치?" 그런 대화가 오간 며칠 후 언니는 형부와 함께 경남 하동 양보면 구정에 있다는 선생님의 집과 밤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언..
전라도에서 농사지으실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논보리를 베어 주러 온 청년에게 "충청도는 보리밭고랑이 좁은데 여기 보리 골은 꽤 넓어 보이네요.""네. 참, 박 선생님은 충청도에서 나셨다고 하셨죠? 여기 보리 골은 1 미터는 됩니다." 선생님은 마을의 한 청년과 함께 보리논에서 보리 베기에 열중하고 계셨다. 이 청년은 마을에서 가장 일 잘하고 특히 낫질에 '내로라' 큰소리치는 '낫질 선수'였다. 선생님의 낫질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던지 이 청년은 대뜸 선생님께 제안을 했다."박 선생님! 우리, 누가 보리를 빨리 베어 나가나 내기 한번 해보시겠어요?" 이 고을에서 한 번도 누구에게 져 본 적이 없는 낫질 솜씨였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낫질에 한번 겨루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그..
좋은 옷이든지 무엇이든지 생기면 늘 이웃에게 나눠 주시는 선생님께서는 늘 비슷한 종류의 색상과 같은 모양의 옷을 자주 입곤 하셨다. 그런데 제자 된 나는 오히려 친척들과 다른 형제들을 통해 좋은 옷도 가끔씩은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을 뵐 때마다 죄송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내 마음 한 편의 아픔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백화점에 들렀다가 마음에 꼭 드는 옷 한 벌을 보게 되었다. 전세계에 수많은 제자들을 두셨어도 워낙 청빈하신 선생님의 성품을 잘 아는 제자들이라 함부로 옷 선물도 못해 드렸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평소에 품고 있던 '옷 선물' 생각이 나의 마음에서 떠나질 않고 맴돌았다. 내 소원이 선생님께 멋있는 옷 한 벌 해 드리는 것이었는데 ' 바로 저 옷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