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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라 Doalnara

아빠가 장난꾸러기처럼 격이 없이 잘 놀아 주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결코 우리를 버릇없게 키우진 않으셨다. 장남이라고 장녀라고, 또 막내라고 편애하지도 않으셨다. 우리가 잘못하여 혹시 꾸지람을 들을 일이 있을 때는 단호하게 야단을 치셨다. 또 한 가지는 셋 중에 누가 잘못하면 그 당사자만 아니라 셋을 모두 불러 함께 꾸지람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형제 우애를 키워 주신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훈계 방법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신사적이셨다. 항상 세 번의 기회를 주셨는데 맨 처음 잘못했을 때는 "한 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 하시고는 용서해 주시고, 그 실수를 두 번 반복했을 때는 "아빠가 더 용서해 줄 테니까 고쳐! 그 대신 세번째 실수하면 아빠와 매를 맞기로 약속한 대로 하는 거야." 그런 아빠의 방..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유행한 놀이 기구가 있었다. 그것은 '스카이 콩콩'이었다. 외발 지팡이의 발판에 올라서서 콩콩 뛰면 스프링이 튀어 올라와서 재미있게 뛰게 만들어 주는 장난감 기구였다. 당시 웬만한 시골 집에선 한 대에 만 원이나 하는 그 장난감을 사 줄 엄두를 못 낼 때인데도 아빠는 우리 삼남매를 위해 그것을 사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 삼남매는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서야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굉장히 어려웠던 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그때 아빠는 순천 시장 안에서 구두 깁는 일을 하셨는데 하루 벌이가 잘되어야 만 원이 조금 넘게 버실 때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꼬박 버신 것을 우리에게 다 털어 주신..

아빠는 어디에 가셔서 며칠이라도 집에 돌아오는 일이 늦어지시면 틀림없이 가족 모두에게 각각 편지를 보내 주시곤 하셨다. 첫번째 엄마에게 쓰신 편지는 우리들도 못 알아보는 빠른 흘림체로 쓰신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빨리 쓴 글씨체는 오빠에게 쓰신 편지, 그 다음으로는 언니에게 써 보내신 약간의 흘림체 글씨. 그러나 아직 어리다고 판단하셨던지 내게 주신 편지만큼은 크고 또박또박 적어 보내신 정자체 글씨였다. 그 밖에도 외출하고 돌아오시는 날엔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꼬박꼬박 우리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오셨다.

나는 막내 딸, 위로 오빠와 언니, 모두 삼남매를 낳아 주신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를 무척 자상하게 돌봐 주셨다. 우리들의 장난에도 함께 어울려 굉장히 재미있게 놀아 주시곤 하셨다. 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날도 아빠와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던지 놀다 놀다 노는 게 그만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놀다 지쳐 버린 나는 근처 냇가로 내려가면서 아빠에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을 했단다. "장난꾸러기 아빠 안녕!" 나의 유년 시절, 우리 아빠는 그렇게 다정하시고 친절한 가장이셨다. 가끔씩 엄마는 친정에 다니러 가시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새벽 일찍이 식사 준비를 하셔서 8시에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언니 오빠를 깨워 밥 먹이시고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등교시켜 주시곤 했다.

몇 해 전, 사모님의 생신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사업을 위해 출근하려고 분주히 방, 부엌, 마당으로 다니시던 사모님이 화장대 앞에 선 순간, 그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하얀 카드 봉투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새 선생님의 ‘몰래’ 방문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만큼이나 겸손과 사랑의 봉사로 뒷받침을 해 온 사모님께 늘 고마워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카드에 당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여 담으셨다. 선생님의 마음이 단어마다 가득 담긴 시를 보며 사모님은 더없이 행복한 날을 맞으신다. 자녀들도 덩달아 “엄마 뭐예요?” 하며 엄마의 등 뒤에서 아빠의 그림처럼 정성 들여 쓰신 시를 보고는 “우와 -“ 감탄을 연발했다. 지금도 선생님께서는 변함없는 당신의 마음처럼, 세상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사랑하는 아내처럼 이 시..

이미 길고 긴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선생님께서 하늘의 뜻대로 사시려고 외길을 걸으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느라 분주하셨던 가난한 시골 살림 동안에도, 초대 강의하시고 받은 강의비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느라고 형편이 풀리지 않는 가난의 긴 세월 동안에도 선생님 곁에서 늘 함께 힘과 격려가 되어 주셨던 사모님이셨다. 현모양처 사모님은 그 어려운 시기 동안 사람들 앞에 나타나신 적이 없었다. 선생님과 자녀들 뒷바라지하시며 또 강의 때마다 봉사하시는 분들 중 한 사람이 되어 함께 식사 준비하고 봉사하시느라 허리를 숙이고만 지내셨다. 늘 선생님 뒤를 따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허리 구부려 인사하시는 모습이 인상으로 새겨진 사모님은 선생님 말씀대로 등이 굽어져 있을 정도이다. 이젠 자녀들도 출가를 할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