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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석선시집 (80)
돌나라 Doalnara

약혼식 날, 선생님께서는 예쁘게 포장한 분홍색 한복감과 예물 시계를 가지고 남원으로 내려가셨다.그러나 당시 사모님의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 만년필로 예물을 대신할 수밖에 없으셨다. 두 분 사이에서야 사랑의 마음과 정성으로 준비한 예물이니 모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집에 돌아가서 먼 거리로 참석지 못하신 부모님께 그대로 말씀 드리기에는 좀 걱정이 되셨다. 짧은 하루가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갑자기 선생님께서는 하얀 봉투를 내밀며 사모님께 받으라고 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영문을 몰라 하시는 사모님께 "일단 내가 주는 돈이니 받아요." 하시며 손에 들려 주셨던 선생님께서는 다시 "이제 그(소유한) 돈을 나에게 주세요." 하셔서 받아 가셨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봉투에는 꽤..

며칠 동안 청년 모임으로 다녀온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지금까지는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다 봉사했지만 이제는 너희들도 컸으니까 너희가 엄마를 위해 다 해 드려야 된다." 하시며 아직은 10대의 딸들에게 부엌일을 맡아서 하도록 하셨다. 딸들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도 살림하는 법을 가르치셔서 9세 정도 되었을 때에는 스스로 밥도 차리고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새참도 날라다 주도록 하셨었다. 그래서 지금은 못하는 요리가 없을 만큼 늘 어머니를 도와 왔지만 오늘은 어머니의 일을 전적으로 물려 받게 된 것이다.아무튼 즐겨 순종하는 딸들 때문에 그날 이후로 사모님께서는 특별한 경우 외로는 부엌에 오지 않으셨다. 시간을 얻으신 사모님께서는 그 동안 선생님께서 하시던 것처럼 무의탁 노인들,..

선생님은 아버님 돌아가신 후 두 어머님을 모셨다. 한 분은 친어머님이셨고, 또 한 분은 장모님이셨다. 친어머님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80세부터 심하게 앓으시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 어릴 때부터 형님들과 동생이 "나중에 어머님은 내가 모셔야 돼." 할 때 선생님께서는 마음속으로만 소원하시고 표현은 없으셨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님께서 편찮으시던 해 추석에 큰형님 댁에 가셨다가 어머님을 모셔 오게 되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쉬면서 쉬면서 모시고 왔는데 다행히 점점 건강해지셔서 92세까지 향수하시도록 함께 지내셨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늘 어머님께 드리고, 또 예쁜 것이 있으면 달아 드리셨는데 "후회 없이 어머님의 여생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

학업을 중단할 정도로 병약했던 17세 되던 해에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선생님은 이제 몸이 회복이 되었으니 신앙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계셨지만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실 수가 없어서 아버님께 여러 번 가출을 당하셔야만 했던 일이 있었기에 이때의 일을 두고 천하의 불효자가 되었다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어디 가서 무슨 일 무슨 고생을 할지라도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스스로 내가 먼저 집을 나온 적도 없습니다. 오직 부모님이 쫓아낼 때에 그때서야 나왔습니다. 부모님이 쫓아내지도 않는데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스스로 부모님을 배반하고 나오는 것은 불효입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녔지만 나는 부모님께 추석 때나 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그리 가난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적수성가하신 분이시라 추수를 하시면 쌀을 팔아서 곧바로 땅을 사셨기 때문에 거의 보리밥을 먹고 사셨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도시락에는 차마 보리밥을 싸지 못하시고 쌀을 반쯤 섞어서 학교에 보내셨는데 선생님은 아버님께서 아침에 보리밥을 드시는 것을 보시고는 차마 쌀이 반쯤 섞인 도시락을 먹을 수가 없어서 조금 먹고는 남겨서 아버지 저녁상에 올려놓았다. "너, 왜 점심 안 먹었느냐?""밥맛이 없어서요." 선생님의 속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더 이상 말이 없으신 아버님이 그 도시락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마음이 기쁘셨다.

돌나라 석선 선생님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이 특별했다.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이라면 언제나 "예"뿐이셨기에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도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릴 때부터 양말 한 짝 찾아 신겨 주는 법이 없이 자랐단다. 초저녁에 잘 때 머리맡에 옷과 버선을 차곡차곡 정돈해 놓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입고 신었기 때문에 너는 말시킬 일이 없었어."라고 말씀을 하셨다.부모님께 대한 효심이 남달랐던 선생님의 생애를 강의 내용과 함께 산 증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부분적이나마 들어 보고자 한다. 나는 어렸을 때 한 가지 우스운 일이 기억 납니다. 5, 6세쯤 되었을 때 일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과일도 없고 밭에 심어 놓은 오이밖에 없으므로 오이가 왜 그렇게 먹고 싶었던지 냄새조차 향긋한 것이 쳐다보기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