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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부모님 (6)
돌나라 Doalnara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유행한 놀이 기구가 있었다. 그것은 '스카이 콩콩'이었다. 외발 지팡이의 발판에 올라서서 콩콩 뛰면 스프링이 튀어 올라와서 재미있게 뛰게 만들어 주는 장난감 기구였다. 당시 웬만한 시골 집에선 한 대에 만 원이나 하는 그 장난감을 사 줄 엄두를 못 낼 때인데도 아빠는 우리 삼남매를 위해 그것을 사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 삼남매는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서야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굉장히 어려웠던 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그때 아빠는 순천 시장 안에서 구두 깁는 일을 하셨는데 하루 벌이가 잘되어야 만 원이 조금 넘게 버실 때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꼬박 버신 것을 우리에게 다 털어 주신..

아빠는 어디에 가셔서 며칠이라도 집에 돌아오는 일이 늦어지시면 틀림없이 가족 모두에게 각각 편지를 보내 주시곤 하셨다. 첫번째 엄마에게 쓰신 편지는 우리들도 못 알아보는 빠른 흘림체로 쓰신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빨리 쓴 글씨체는 오빠에게 쓰신 편지, 그 다음으로는 언니에게 써 보내신 약간의 흘림체 글씨. 그러나 아직 어리다고 판단하셨던지 내게 주신 편지만큼은 크고 또박또박 적어 보내신 정자체 글씨였다. 그 밖에도 외출하고 돌아오시는 날엔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꼬박꼬박 우리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오셨다.

나는 막내 딸, 위로 오빠와 언니, 모두 삼남매를 낳아 주신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를 무척 자상하게 돌봐 주셨다. 우리들의 장난에도 함께 어울려 굉장히 재미있게 놀아 주시곤 하셨다. 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날도 아빠와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던지 놀다 놀다 노는 게 그만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놀다 지쳐 버린 나는 근처 냇가로 내려가면서 아빠에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을 했단다. "장난꾸러기 아빠 안녕!" 나의 유년 시절, 우리 아빠는 그렇게 다정하시고 친절한 가장이셨다. 가끔씩 엄마는 친정에 다니러 가시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새벽 일찍이 식사 준비를 하셔서 8시에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언니 오빠를 깨워 밥 먹이시고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등교시켜 주시곤 했다.

선생님은 아버님 돌아가신 후 두 어머님을 모셨다. 한 분은 친어머님이셨고, 또 한 분은 장모님이셨다. 친어머님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80세부터 심하게 앓으시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 어릴 때부터 형님들과 동생이 "나중에 어머님은 내가 모셔야 돼." 할 때 선생님께서는 마음속으로만 소원하시고 표현은 없으셨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님께서 편찮으시던 해 추석에 큰형님 댁에 가셨다가 어머님을 모셔 오게 되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쉬면서 쉬면서 모시고 왔는데 다행히 점점 건강해지셔서 92세까지 향수하시도록 함께 지내셨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늘 어머님께 드리고, 또 예쁜 것이 있으면 달아 드리셨는데 "후회 없이 어머님의 여생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

학업을 중단할 정도로 병약했던 17세 되던 해에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선생님은 이제 몸이 회복이 되었으니 신앙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계셨지만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실 수가 없어서 아버님께 여러 번 가출을 당하셔야만 했던 일이 있었기에 이때의 일을 두고 천하의 불효자가 되었다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어디 가서 무슨 일 무슨 고생을 할지라도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스스로 내가 먼저 집을 나온 적도 없습니다. 오직 부모님이 쫓아낼 때에 그때서야 나왔습니다. 부모님이 쫓아내지도 않는데 부모님이 신앙을 반대한다 하여 스스로 부모님을 배반하고 나오는 것은 불효입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녔지만 나는 부모님께 추석 때나 설..

내가 만난 돌나라 석선 선생님 [선생님 댁 두 어머님] 선생님은 아버님 돌아가신 후 두 어머님을 모셨다. 한 분은 친어머님이셨고, 또 한 분은 장모님이셨다. 친어머님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80세부터 심하게 앓으시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 어릴 때부터 형님들과 동생이 "나중에 어머님은 내가 모셔야 돼." 할 때 선생님께서는 마음속으로만 소원하시고 표현은 없으셨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님께서 편찮으시던 해 추석에 큰형님 댁에 가셨다가 어머님을 모셔 오게 되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쉬면서 쉬면서 모시고 왔는데 다행히 점점 건강해지셔서 92세까지 향수하시도록 함께 지내셨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늘 어머님께 드리고, 또 예쁜 것이 있으면 달아 드리셨는데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