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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라 석선 선생님의 가르침 | 효자 石仙 선생님 <선생님 댁 두 어머님> 본문

세상을 바꾼 가르침

돌나라 석선 선생님의 가르침 | 효자 石仙 선생님 <선생님 댁 두 어머님>

돌나라 2025. 2. 4. 08:30

 

 

선생님은 아버님 돌아가신 후 두 어머님을 모셨다. 한 분은 친어머님이셨고, 또 한 분은 장모님이셨다. 친어머님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80세부터 심하게 앓으시면서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

 

어릴 때부터 형님들과 동생이 "나중에 어머님은 내가 모셔야 돼." 할 때 선생님께서는 마음속으로만 소원하시고 표현은 없으셨다.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님께서 편찮으시던 해 추석에 큰형님 댁에 가셨다가 어머님을 모셔 오게 되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쉬면서 쉬면서 모시고 왔는데 다행히 점점 건강해지셔서 92세까지 향수하시도록 함께 지내셨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늘 어머님께 드리고, 또 예쁜 것이 있으면 달아 드리셨는데 "후회 없이 어머님의 여생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장모님도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하셨다. 교감 자격을 가진 큰따님 집도 잘 모시는데도 작은사위와 살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게 되셨다.(말년에는 교대로 모셨음) 선생님은 항상 그 두 어머님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 같았다. 마당 한 켠 평상에서 없는 시간을 쪼개 매일매일 어머님들과 얘기꽃을 피우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두 어머님은 그렇게 행복해하셨다. 두 분에게 선생님께서는 구김살 없이, 또한 구분 없이 똑같은 관심과 사랑으로 모셨다.

 

두 분은 꽤 다르셨다. 선생님 어머니는 강직하셨다. 예의가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셨고 경박한 농담이나 사적인 감정은 절대로 나타내지 않으셨다. 화장실에 가시고 싶으면 거동이 그렇게 불편하신데도 끝까지 혼자 지팡이를 짚고 갔다 오셨다. 자식들에게 괴롬 끼치는 일을 절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이셨다.

 

반대로 선생님 장모님께서는 모두가 친구일 정도로 자상하시고 항상 따듯하셨다. 사람들이 방문할 때면 낯설지 않은 친구의 모습으로 쉽게 다가오셨다. 이렇게 서로 다른 분들이 처음엔 한 방에 사셨으니 잘 안 맞기도 하셨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금방 서로를 찾고, 한 분이 외출하시면 맛있는 것 있으면 챙겨 놨다 주시면서 사시는 모습은 언제나 뵈어도 매우 흐뭇했었다. 그러다 얼마 후에 선생님께서 드디어 어머님들이 각자 쓰실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드리고는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두 분이 다투신 일이 있었다. 그리고는 어머님은 그렇게 좋아하던 화투도 안 하시고 누워만 계셨다. 그럴 때는 능숙하게 선생님은 당신의 어머님을, 그리고 사모님은 당신의 어머님을 맡고 각자 작전을 펴신다. 작전은 '어린아이 작전'이다.

 

아기 같은 표정과 모습으로 어머님 품에 억지로 안기시거나 치마꼬리를 붙잡고 "엄니, 엄니" 하면서 재롱을 부리실 때면 어머님께서는 품안에 품은 자식을 보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그러면 당신의 모든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리고는 바로 장모님께 조용히 찾아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엄니, 그때 엄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이 생각이 나네요. 그 음식 한번 해주세요. 제가 결혼할 때 엄니가 참 좋았어요. 엄니가 저 사람보다 더 고우셨지요. 사실 저는 엄니 보고 장가 갔어요."

그러실 때면 장모님께서는 새색시같이 얼굴이 밝아지신다. 선생님 가정은 이렇게 불화를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다.

 

또한 선생님은 두 분에게 섭섭하지 않게 해 드리기 위하여 항상 똑같이 대접해 드리셨다. "노인이 되면 아기가 돼. 똑같이 해 드려야 한다." 하시며 용돈을 드릴 때도 편지 봉투에다 빳빳한 새 돈을 넣어서 똑같이 드렸고 옷이나 보약을 선물하실 때도 두 분에게 똑같이 선물하셨다. 심지어 출타하실 때도 똑같이 큰절을 드리시며 못 알아들으실까 봐 친어머님 귀에도, 장모님 귀에도 큰소리로 "엄니, 다녀 올게유." 하셨다.

 

이렇듯 선생님께서 어머님의 살아 생전에 모셨던 효는 너무나도 지극하셨다. 그리고 한 분 모시는 것보다 두 분을 모시는 것을 더 행복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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